1. 개요 #
커피에서 발효(Fermentation) 를 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커피를 먹기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커피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 이다. 우리는 커피 열매를 먹는 것이 아니라, 커피 열매의 씨앗을 볶아 먹는 것이다. 그리고 이 씨앗은 껍질-과육-점액질-파치먼트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 이 중, 껍질과 과육은 분리하기 쉽지만, 점액질과 파치먼트는 벗겨내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점액질의 경우 파치먼트에 찰싹 달라 붙어 있기 때문에 분리하는 것이 어렵다. 자두 씨앗을 생각하면 딱 좋다. 자두 씨앗에 붙어있는 실타래(?)와 점액질은 이로 갉아 먹으려해도 쉽지가 않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커피 발효의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이 ‘점액질 제거’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이 가공 과정이 커피향미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발효는 커피 가공 방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커피 가공 방식은 다양한데, 거의 대부분의 가공 방식에서 발효를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커피체리의 껍질과 과육을 벗겨낸다. 수동이나 자동 기계를 이용한다. 물론, 자연 건조(내추럴, Natural) 가공 방식을 사용하면, 과육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통째로 건조시킨다. 과육을 제거한 다음, 점액질을 제거하기 위해, 물에 담구어 두거나(수세 가공 방식(워시드, Washed)) 햇볕에 말린다(Honey, Pulped Natural). 나라에 따라서 부르는 명칭과 디테일한 과정은 달라질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는 이러한 과정을 따른다. 수세식(워시드) 가공과정에서는 마지막 단계로, 수분율을 10% 전후에 맞추기 위해 파치먼트를 건조시킨다. 10%전후의 수분율을 맞추는 것은 미생물 번식이나 세균감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수출 직전에 파치먼트를 탈곡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피 생두가 나타난다.
2. 커피 가공의 경향과 발효 #
사실, “발효”라는 단어가 엄밀하게 말하자면, 커피가공에서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좁은 의미에서는 잘못된 표현이고, “미생물에 의한 유기물 분해”라는 넓은 표현으로 보자면 적절할 수도 있겠다. 좁은 의미에서, 발효(Fermentation)란 ‘무산소 환경’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발효와 형식은 다르지만, 미생물이 관여할 수 있다는 ‘내용’은 비슷하니 그러려니 하자.
최근 커피 가공은 다양한 발효(Fermentation)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발효가 커피 풍미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착안하여, 와인이나 맥주 등의 주조발효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와인이나 맥주는 발효된 내용물을 직접 음용한다는 특징을 가지지만, 커피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커피의 씨앗을 먹는다. 커피 씨앗 자체는 포도당과 같은 당류가 적기 때문에 발효의 대부분은 (씨앗이 아니라) 씨앗의 바깥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이 발효과정에서 생성된 여러 가지 물질(특히 산과 방향족 화합물)이 커피 향미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방향족 화합물이란, 향을 내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커피씨앗은 다공질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생성된 다양한 물질들이 커피 생두에 저장·흡착될 수 있다. 커피의 가공 과정과 생두의 구조적 특징을 착안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커피는 씨앗자체의 맛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향”되고 “가미”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발효에 대한 관심 덕분에, 커피에서도 까보닉 마쎄라시옹(Carbonic Meceration, 카보닉 메서레이션), 이스트 첨가 발효, 젖산 발효 등을 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