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발효와 부패는 모두 미생물이 관여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명확하게 구분할 과학적 기준은 없다. 발효는 긍정적인 표현이고, 부패는 부정적인 표현이다. 관능적인 기준으로는, 발효는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고, 부패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청국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청국장은 발효식품이고, 청국장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청국장은 부패식품인 셈이다.
숙성은 발효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식품과학기술대사전」에 따르면, 숙성의 정의는 “일정 조건 하에서 얼마간 방치하여 목표로 하는 식품에 어울리는 성질을 갖게 하는 조작”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가만히 냅둔다는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방치이다. 숙성 중에 발효가 일어나는 것은 선택사항이지 의무사항은 아니다. 조직이 안정화되도록 시간을 가지는 행위 또한 숙성이다. 애초에 숙성과 발효를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약간 무리가 있다.
2. 정의 #
발효에는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가 있다. 좁은 의미로 이야기하면, 발효란, “미생물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당류를 무산소상태에서 분해하는 과정”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미생물에 의한 모든 유기물 분해과정”이다. 좁게 보면, 발효는 애초에 ‘무산소 상태’를 항상 전제로 하고 있다. 미생물들은 이곳 저곳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도 호흡(에너지 생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런 미생물들을, 산소를 이용하지 않는 혐기성 미생물이라고 부른다. 물론, 산소를 이용하는 미생물도 있다. 이런 미생물들은 호기성 미생물이라고 부른다.
미생물의 대표적인 예시가 ‘효모'(yeast)이다. 효모는 영어로 ‘yeast’ 인데, 그리스어로 ‘끓는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발효시 생성되는 거품(이산화탄소)을 끓는 것으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효모는 와인이나 맥주 제조 공정에도 이용되는데, 이들은 대부분 혐기성 미생물이다. 산소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혐기성 효모’라고 해서 반드시 무산소 호흡만 하는 것은 아니다. 효모들은 서식 환경에 따라 산소 호흡과 무산소 호흡을 병행해서 한다. 다만, 무산소상태에서는 알코올이나 젖산을 만들어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보통 효모들은 ‘통성 혐기성(facultative anaerobic)’ 이라고 부른다.
효모들의 호흡(에너지 생성)은 산소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무기 호흡”이라고 부르며, 인간이 평소에 하는 호흡은 “유기 호흡”이라고 한다. 무기호흡과 유기호흡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유기호흡과 무기호흡은 모두 포도당을 이용한다. 하지만, 유기호흡을 일련의 많은 과정을 거쳐 1개의 포도당으로 38개의 ATP를 만들어낸다. ATP란, 쉽게 말해 에너지 단위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밥을 먹는 이유는, 최종적으로 ATP를 얻어 에너지로 쓰기 위함이다. 반면, 무기호흡은, 같은 포도당 1개를 분해하지만, 소량의 ATP밖에 만들어내지 못한다(2개).
유기호흡은 당을 분해하는 “해당과정”을 거쳐, TCA 라고 불리는 회로를 통해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부산물 없이 포도당을 거의 완전히 분해하게 된다. 반면, 무기호흡은 해당과정만 거치면 끝이다. 인간도 가끔 무기호흡을 할 때가 있다. 갑작스럽게 에너지가 필요할 때, 우리는 무기호흡을 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무산소 운동’이다. 숨을 꾹 참고 힘을 갑자기 주게 되면, 우리 몸은 빠르게 에너지를 만드려고 한다.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갑자기’ 필요하기 때문에 무기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하지만, 이는 굉장히 비효율적인 과정이다. 유기호흡을 하면, 포도당 1개로 38개의 ATP를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호흡을 하면 2개의 ATP밖에 만들지 못한다. 유기호흡에서는 그럴듯한 부산물이 없으나, 무기호흡을 할 때에는 부산물로 젖산이 생성된다. 젖산은 우리 몸에 축적되어 피로를 유발한다. 근육이 피로해지는 이유가 바로 젖산 때문이다.
3. 발효의 쓰임 #
발효가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이유는, 발효 과정에 따라 생성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효모(yeast)는 곰팡이와 같은 균(fungus)계에 속하는 단세포 미생물이며, 현재 1500여 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당이 있는 곳이라면, 효모는 어디서든지 자란다. 과일, 꽃 등이 대표적인 서식지이다. 물론 커피 체리에도 효모가 존재한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에도 자연 효모들이 있다. 이 효모들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물질을 생성해낸다. 가장 유명한 발효 두 가지는 “알코올 발효”와 “젖산 발효”이다.
3.1 알코올 발효 Alcohol Fermentation
알코올 발효는 포도당을 이용해 최종적으로 에탄올(알코올)을 만드는 과정이다. 주조 과정에 널리 이용 되며, 맥주, 와인, 막걸리 모두 알코올 발효를 이용한 것이다. 인공적으로 효모를 추가하지 않아도 되지만, 통상적으로 맥주 발효와 와인 발효에는 효모가 첨가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향미와 관련된 이유도 있고, 알코올 도수를 높이려는 의도도 있다. 이 과정에는 산소가 관여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산소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
3.2 젖산 발효Lactic Acid Fermentation
젖산 발효의 대표적인 예시는 요거트와 김치이다. 포도당을 이용해 젖산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며, 젖산균이 관여한다. 젖산균도 앞서 이야기한 효모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곳에 분포한다. 우리 몸에도 있다. 젖산균의 다른 이름은 유산균이다. 역시 혐기성 미생물이며, 젖산균의 종류에 따라 통성 혐기성일 때도 있다. 그 종류 역시 무궁무진하다. 그 유명한 파스퇴르는 젖산발효가 젖산균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을 밝힌 사람이다. 젖산발효는 단독반응으로 진행될 때도 있지만(호모락트산 발효, Homo-Lactic acid fermentation), 알코올이나 아세트산 등의 다른 물질도 함께 생성하는 혼합 발효로 이뤄질 때도 있다(Hetero-Lactic acid fermentation).
3.3 아세트산 발효 Acetic Acid Fermentation
아세트산 발효는 알코올 발효나 젖산 발효와는 다른 종류이다.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발효가 아니다. 아세트산균은 호기성 미생물로, 산소를 이용해 아세트산을 만들어낸다. 에탄올을 만들어 내는 알코올 발효가 초기 단계는 비슷하며, 최종적으로는 산소가 관여해 아세트산을 생성한다. 상온에서 낮은 도수의 알코올을 두면, 신맛이 강해지는데, 이것은 아세트산 발효의 결과이다. 알코올 도수가 너무 높으면 아세트산 발효는 이뤄지지 않는다. 또한 아세트산 농도가 높아져 pH가 낮아지면, 역시 발효가 멈춘다. 젖산과는 다른 뉘앙스의 산미를 가지게 되며, 우리가 알고 있는 톤이 높은 산미가 나타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