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 물에 대해 공부하기 전에 읽어야 하는 글
1. 물의 성질 #
1.1 용존 미네랄
우리가 사용하는 물 속에는 무수히 많은 미네랄들이 녹아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미네랄이란, 물 속에 녹아 있는 수많은 이온들을 말한다. 물의 특성은 이 이온들로부터 나타난다. 우리가 식수로 사용한 물에는 주로 칼슘 이온(Ca2+), 마그네슘 이온(Mg2+), 나트륨 이온(Na+), 칼륨 이온(K+), 수소 이온(H+)으로 구성된 양이온들과 중탄산 이온(HCO3–), 염화 이온(Cl–) 등으로 구성된 음이온들이 함유되어 있다. 이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유입되며, 취수지의 특성에 따라 물의 화학적 조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지하수의 경우 (암석의 종류나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칼슘과 나트륨이 풍부한 경향을 보이며, 이들의 함량은 여느 취수지보다 높게 나타난다. 한편, 해양심층수의 경우 다른 미네랄보다 마그네슘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용존 미네랄은 일반 사람이 음용할 때에도 충분히 구분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유의미한 관능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 중 몇 가지 미네랄들은 우리가 생활용수로 사용하기에 때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물의 품질을 평가하곤 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물의 품질과 직결된 몇 가지 미네랄들과 물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1.2 수소 이온 농도 (pH)
수소는 전자를 잃고 양이온이 되려는 성질을 갖는다. 그래서 수소는 이온이 되었을 때 H+라는 양이온이 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수소 이온을 포함하는 물질들은 대게 산성을 갖게 된다. 염산(HCl), 아세트산(CH3COOH), 황산(H2SO4), 질산(HNO3)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산성을 띠는 물질은 물에 녹았을 때 수소이온(H+)을 내놓는다. 예를 들면, 아세트산의 화학식은 CH3COOH 인데, 아세트산이 물에 들어가면 CH3COOH은 CH3COO–와 H+로 분리된다. 같은 원리로 염산(HCl)은 물에 녹아 H+와 Cl–로 분리된다. 염산과 아세트산은 똑같이 수소 이온을 내놓지만, 아세트산은 일부만 분리되고, 염산은 거의 모든 수소 이온이 분리된다. 그래서 더 많은 수소 이온을 내놓는 염산은 강산이고, 아세트산은 약산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물질들이 물에 녹으며 내놓는 H+의 농도를 pH라고 한다. pH가 작을수록 강한 산성이며 신맛을 나타내고, pH가 높을수록 강한 염기성이다. 중성의 pH는 7.0이다.
하지만, pH 측정기를 통해 커피의 산미 강도를 추정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그것은 신맛을 느끼는 우리 몸의 메커니즘의 특성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항목을 참조 : 신맛의 메커니즘
1.3 경도 (Hardness)
경도는 물에 녹아 있는 마그네슘 이온(Mg2+)과 칼슘 이온(Ca2+)의 농도이다.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단위는 (mg/l) 또는 (ppm)을 사용한다. 순수한 마그네슘 농도와 칼슘 농도는 아니며, 각 이온을 탄산칼슘의 양으로 치환했을 때의 농도이다. 경도에는 일시경도와 영구경도가 있다. 일시경도는 물을 끓였을 때 사라질 수 있는 경도를 말하며, 영구경도는 물을 끓여도 사라지지 않는 경도이다.
경도는 영어로 Hardness 이며, 물의 세기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마그네슘 이온과 칼슘 이온이 일정한 기준보다 많이 포함되어 있으면 ‘경수’, 적게 포함되어 있으면 ‘연수’라고 부르지만, 그 기준은 결코 명확하지 않다. 통상적으로 0~100ppm을 연수, 100~200ppm을 중경수(중연수), 300ppm을 넘어가면 경수라고 부르기는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센물’은 ‘경수’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고, ‘단물’은 ‘연수’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경도는 물의 맛에도 영향을 준다. 경도가 높으면 가볍지 않고, 칼칼하며 진한 맛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경도가 낮으면 밍밍하거나 담백하고 연한 맛을 가진다.
1.4 알칼리도 (Alkality)
알칼리티(또는 알칼리도)의 정의는 ‘산을 중화 시키는 능력’이다. 알칼리도를 결정하는 주요 구성 성분은 중탄산 이온(HCO3–), 수산화이온(OH–), 탄산이온(CO32-)이다. 예를 들어, 물 속에 수산화이온(OH–)이 많이 들어있다고 가정해보자. 수산화이온이 많이 들어있는 물에 산성을 나타내는 수소이온(H+)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없는 증류수에 산성을 나타내는 수소이온이 들어가게 되면, 수소이온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pH는 낮아진다. 하지만, 만약 물 속에 수산화이온이 충분히 들어 있다면, 수산화이온은 수소이온과 결합하여 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산성을 나타내야 하는 수소이온이 사라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pH가 낮아지지 않는다.
1.5 총 용존 고형물 (Total Dissolved Solids)
총 용존 고형물(이하, TDS)는 물 속에 녹아 있는 고형물질의 농도이다. 물에는 수많은 미네랄들이 녹아 있다. 앞서 말한 마그네슘이온, 칼슘이온, 중탄산 이온 모두 미네랄에 속한다. 이들을 모두 총합하여 계산한 농도가 TDS 이다. 간혹 물의 TDS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TDS 자체만으로는 물의 성질을 이야기할 수 없다. 단순히 ‘총 미네랄 함량’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물에는 수많은 미네랄들이 있고, 이 미네랄들이 하는 일들은 제각각이다. TDS는 전체 미네랄의 양을 말해줄 뿐, 어떤 미네랄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미네랄 하나하나의 중요성이 커지는 지금 시대에서, TDS는 아주 만족스러운 지표가 될 수 없다. 아주 조금 도움이 될 때가 있는데, 그건 TDS가 너무 낮거나(20이하) 너무 높을 때(200~300이상)이다. 그런 물은 커피 추출에서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가정용 상수도의 TDS는 70전후이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조금 있는 편이다. 전라도 남단으로 갈수록 상수도 TDS는 크게 낮아진다. 삼다수의 TDS는 20~30 사이이며, 에비앙의 TDS는 250~300이상이다.
2. 커피와 미네랄 #
2.1 커피를 위한 물
SCA는 커피 제조에 사용하는 물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한다.
- 냄새가 없고 위생적이어야 한다.
- 염소, 하이포아염소산, 클로르아민이 완전히 없어야 한다.
- 총 경도는 CaCO3 50~175ppm 이어야 한다.
- 알칼리도는 CaCO3 40~75ppm 이어야 한다.
- pH는 6.5~8.0 이어야 한다.
2.1.1 기술적 관점
기술적 관점에서 물의 특성은 에스프레소 머신의 관리와 직결되어 있다. 높은 경도, 높은 알칼리도를 가진 물은 보일러와 배관에 스케일(탄산칼슘)을 만들어낸다. 한편, 알칼리도가 낮은 경우에는 부식의 위험이 있다. SCA는 스케일이나 부식의 위험이 있는 물의 특성을 다음과 같은 표로 제시해주고 있다. 첫 번째 자료는 스케일 형성 영역을 표시한 그림이며, 두 번째 자료는 부식 위험 영역을 표시해주고 있다.

2.1.2 관능적 관점
관능적인 관점에서 물은 어느 정도의 경도와 알칼리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경도의 경우 커피 향미 성분의 추출 효율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커피의 주요 성분들을 2가 양이온의 강한 전기적 인력을 통해 추출해낸다는 추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은 커피 농도계를 통해 증명되지 않는다. 많은 실험에서 유의미한 농도 및 수율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한편, 알칼리도는 산을 중화 시키는 능력으로 커피의 산미 강도를 낮추는 데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2.2 이온의 역할
물 속에 주로 포함된 양이온에는 마그네슘 이온, 칼슘 이온, 나트륨 이온, 칼륨 이온이 있다. 이들은 전기적으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성질을 가진 물질들을 끌어당긴다. 커피에 있는 다양한 유기물질(유기산)들은 (-)성질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양이온이 많을수록 커피의 유기물 추출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추정했었다. 양이온 중에서도 마그네슘과 칼슘이온은 2가 양이온으로, 1가 양이온인 나트륨과 칼륨보다 특히 더 강한 힘으로 커피 성분을 끌어 당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개인적인 추정이라고 이야기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이라고 여기고 여러 강연 등에서 같은 논리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의미한 결과를 보고하는 연구와 실험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온의 존재가 실제 추출된 커피 수율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결론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물의 화학적 조성이 사람이 느끼는 커피 향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15차례 지역을 돌며 (비교적) 커피 전문가 집단들과 물과 이온에 대한 관능 실험을 진행했다. 모두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하였으며, 다음은 그 수 차례의 관능평가를 통해 나온 주요 미네랄에 대한 통계적인 관능 특성이다.
2.2.1 칼슘 이온의 영향
칼슘 이온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물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게감을 갖는다. 추출된 커피에서는 초콜릿, 캐러멜과 같은 상대적으로 무거운 향미들의 발현을 촉진시킨다. 향미는 무거워지지만 산미는 보다 밝게 나타내는 성질을 보인다.
2.2.2 마그네슘 이온의 영향
마그네슘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물은 무거운 무게감과 부드러운 질감을 갖는다. 추출된 커피에서는 꽃과 과일 같은 밝은 느낌의 향미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산미의 생동감을 높여주지는 않았다.
2.2.3 중탄산 이온의 영향
커피의 전반적인 향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지나치게 높을 때에는, 커피의 산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모든 향미를 평이하게 만든다. 이는 스페셜티 커피의 향미가 산미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산미의 강도를 낮추어 전반적인 향미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 알칼리도가 전혀 없는 물의 경우 때로는 커피의 산미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산미를 날카롭게 만들어 목넘김을 어렵게 만들곤 했다.
한편, 지나치게 높은 알칼리도는 산의 중화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 추출 시간을 길게 만들어 과추출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반대로 알칼리도가 0에 가까운 물은 이산화탄소 방출이 없어 커핑(cupping) 단계에서 크러스트(crust)가 바로 깨지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2.2.4 나트륨의 영향
나트륨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물은 단맛이 나타난다. 이는 커피에서도 이어진다. 커피의 단맛이 향상되며 산미가 부드럽게 느껴지고 전반적인 향미의 품질이 향상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을 때에는 커피의 향미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커피의 생동감이 낮아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2.2.5 종합
같은 경도의 표본을 비교 했을 때, 산미의 강도는 칼슘, 증류수, 마그네슘, 중탄산 이온 표본 순서대로 높게 나타난다. 즉, 칼슘 이온은 산미의 강도를 높여주는 데에 확실한 역할을 한다. 반대로 중탄산 이온은 이론 대로 산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경도 200ppm 수준에서 마그네슘 이온으로만 구성된 커피와 칼슘 이온으로만 구성된 커피를 비교해보았을 때, 그 향미의 강도는 거의 비슷하다. 다만, 향미의 종류가 극명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칼슘 경도가 높은 표본은 산미의 톤이 높아지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향미는 어두워지고 특히 초콜릿 계열의 향이 강조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마그네슘 경도가 높은 표본의 경우 꽃과 과일의 향미가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는 경향을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경도를 400ppm 수준으로 높여서 실험한 표본에서는 증류수보다도 향미 강도가 낮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는 경도 유발 물질이 많을수록 커피 향미가 강해진다는 것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반례이다.
질감은 마그네슘 이온, 중탄산 이온, 증류수, 칼슘 이온 순으로 긍정적인 경향을 보인다. 특히, 마그네슘 비율이 높은 표본의 경우 다른 샘플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다. 알칼리도가 높은 표본의 경우 증류수에 비해 조금 더 무거운 바디를 가진다. 한편, 칼슘으로만 구성된 표본은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가지지만 질감이 거친 모습을 보이며, 경도 400ppm 수준에서는 강한 텁텁함을 느끼게 만든다. 알칼리도 400ppm 표본은 입 안을 마르게 하거나 입 안에 커피를 머금고 있을 때 떫은 느낌을 주는 경향이 있다.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토대로 추정할 때,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다. 첫째, 미네랄은 커피 향미 성분을 감각하는 과정에 영향을 준다. 둘째, 미네랄이 향미 성분과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향미를 만들어낸다. 이 두 가지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단순히 커피 추출력에서 비롯되는 관능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