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커피녹병(Coffee Leaf Rust)은 헤밀레이아 바스타트릭스(Hemileia castatrix)라 불리는 곰팡이균이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커피와는 물리적인 접촉을 통해 전염을 일으킨다. 하지만, 곰팡이균은 바람을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전염성이 아주 높다. 현재 병든 나무를 치료하는 기술은 개발되어있지 않으며, 병든 나무는 발견 즉시 불에 태워 없애고 있다. 하지만, 일단 녹병이 발견되면, 주변 나무 역시 전염되었을 확률이 높고, 해당 농가는 한 해 농사를 거의 망치기도 한다. 해결을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는 유전적으로 강한 품종을 개발하는 것밖에 없다.
커피녹병은 커피 나뭇잎에 곰팡이가 생김으로서 결과적으로 나뭇잎이 나무로부터 떨어지게 만든다. 잎은 식물에게 있어 에너지를 생산하는 주요 기관이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며 커피나무를 궁극적으로 죽게 만든다.
코페아 품종은 크게 아라비카(Coffea Arabica)와 카네포라(Coffea Canephora)로 나눌 수 있다. 카네포라 종의 하위 품종인 로부스타(Robusta)는 커피녹병에 저항력이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는 유전자 개수가 달라 이론적으로는 교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동티모르에서 아라비카와 로부스타가 자연교배된 티모르 하이브리드 (timor hybrid)가 발견됨에 따라 커피 녹병에 저항력이 있는 품종을 개발하는 것에 길이 열렸다.
커피품종의 개발은 마치 제로섬게임(Zero-sum game)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좋은 향미와 병충해 저항력의 균형 있는 개발이 강제된다. 다시 말해, 좋은 향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높은 병충해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품종을 개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품종 개발의 연구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례 1 : 콜롬비아 #
콜롬비아의 수출 산업은 오래전부터 커피에 의존하고 있었다. 농민 뿐 아니라, 정부 역시 커피 생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정부기관인 콜롬비아커피농민연합(FNC)과 커피연구기관(CENICAFE)는 오래전부터 품종 개량을 시도해왔다. 1983년 커피 녹병은 남아메리카 국가들을 강타했다. 이미 중앙아메리카 국가는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으며, 브라질의 경우 생산량이 30%이상 줄어들었다. 하지만, 콜롬비아는 커피 녹병이 콜롬비아를 찾아오기 전에 이미 커피 녹병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 국가차원에서 보급하고 있었다. 덕분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고, 다른 국가들에 비해 그 피해가 적었다. 그 품종이 바로 콜롬비아종(Variedad Colombia)이다.
콜롬비아종은 일종의 카티모르 (Catimor) 품종이다. 카티모르종은 티모르 하이브리드 (timor hybrid)와 카투라 (caturra)의 교배종이다. 카투라는 콜롬비아에서 전통적으로 재배해오던 품종으로 향미 품질이 좋다고 알려져있다. 티모르 하이브리드 (timor hybrid)의 녹병 저항력과 카투라의 높은 향미 품질 적절하게 교배한 성공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콜롬비아는 커피 녹병을 일으키는 병원균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 미리 대비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더 강한 품종을 원했다. 생산성이 뛰어나고, 저항력도 강하며, 상품성있는 품종을 개발하기 원했다. 그렇게 탄생한 품종이 카스티요(Castillo)이다. 카스티요 역시 콜롬비아종과 마찬가지로 카티모르계열이다.
2005년, 콜롬비아에서는 “커피 녹병 없는 콜롬비아”운동이 정부 주도하에 시작되었다. 카스티요는 이 때부터 정식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커피연구소 CENICAFE는 끊임없이 새로운 품종을 위해 연구했다. 콜롬비아의 커피산지는 남부와 북부로 나눌 수 있었는데, 이런 콜롬비아 커피 산지 내에서도 기후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래서 각 지역에 가장 적합한 품종을 개발해냈다. 마치 맞춤정장처럼 각각의 품종은 지역명을 붙여 이름 지어졌다 : Castillo Naranjal, Castillo La Trinidad, Castillo El Rosario, Castillo Pueblo Bello, Castillo Santa Barbara, Castillo El Tambo, Castillo Paraguaicito. 한 연구진들은, 다양한 카스티요 품종에 대한 관능평가를 실시하였는데, 해당 연구에선 기존 카스티요나 콜롬비아종과 비교했을 때 맛에 대한 큰 차이는 없다고 보고했다.
커피녹병은 다양한 병원균으로부터 발생한다. 즉, 커피 녹병에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말이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그 병원균이 50여가지가 된다. 다행히도, 국가(또는 대륙)마다 존재하는 커피 녹병이 그리 다양하진 않다. 그러니, 해당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만 있으면 된다. 예컨데, 코스타리카에서 커피 녹병에 강한 품종은 코스타리카에 존재하는 병원균에 강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모든 녹병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제 위험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저항력이 있는 품종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저항력을 점차 잃어가게 된다. 새로운 커피 녹병이 언제 발견될 지 모른다. 또한, 현재 저항력을 갖고 있는 품종들이 언제 그것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카스티요는 2005년에 첫 재배가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커피녹병과 커피베리병에 대한 저항력을 유지하고 있다.
품종 개발은 성벽을 쌓는 것과 같다. 커피 녹병이라는 적군이 몰려오는 것을 대비하여,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성벽은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다. 다만, 그 성벽이 버티는 동안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내야 하는 것이다. 카스티요는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콜롬비아를 지켜주고 있다. 그 시간 덕분에 콜롬비아는 계속 새로운 품종이라는 성벽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사례 2 : 온두라스 #
파라이네마는 사치모르(Sarchimor)계열의 품종이다. 사치모르는 비야 사르치 (Villa Sarchi)와 HDT의 교배종이다. 비야 사르치는 버번(bourbon) 품종의 돌연변이 종인데, 이는 키가 작아 밀집 재배가 가능하여 생산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사치모르는 포르투갈에서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포르투갈 커피연구소 CIFC에 등록 이후, 사치모르는 브라질로 넘어가게 된다. 브라질커피연구소 IAC에서 일련의 시험을 거친 뒤, 다시 중앙아메리카의 수많은 나라로 전달되었다. 처음 도착한 나라는 코스타리카였다. 코스타리카에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중앙아메리카 국가 각각에게 적합한 품종을 개발해냈다. 온두라스를 위해 개발된 품종은 파라이네마이다. 사실, 이 당시에 만들어진 품종은 엘살바도르의 Cuscatleco, 푸에르토리코의 Limani, 니카라과의 Marsellesa, 브라질의 Obata-Rojo, IAPAR59 등이 있지만, 대부분 향미품질이 낮다는 이유로 성공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파라이네마는 달랐다. 파라이네마는 병충해 저항력이 높으면서 뛰어난 향미품질을 자랑하여 저명한 커피대회 Cup Of Excellecne에서 매년 높은 순위를 차지하게 된다. 파라이네마는 온두라스 농부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가 되었다. 녹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새로운 돌연변이 녹병 병원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마음의 짐을 덜고 농부들이 커피생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이는 온두라스 농민들의 경제적 안정성을 높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